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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니와의 빼빼로데이 본문
"아키라, 너 좋아하는 애 있어?"
뜬금없는 카이의 질문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키라가 움찔 굳었다. 그의 동생은 사소한 질문에도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 가족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어서겠지. 주춤주춤 돌아앉아 어느새 정좌한 동생을 보고 카이는 조금 입이 써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나는 여태까지 누구랑 제대로 대화도 나눠 본 적 없고, 오래 같이 있던 사람도 없고, 그래서,"
카이의 입맛이 더욱 써졌다. 역시 그렇겠지.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첫사랑의 기억도, 동생에게는 누릴 수 없는 사치이다. 그가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인 순간, 동생이 베개를 고쳐 안으며 수줍게 대답했다.
"그래도 지금은, 있을지도........"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던 생각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카이는 고개를 번쩍 들고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동생은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모습에 기분이 유쾌해진 카이는 푸핫 하고 웃으며 동생의 어깨를 툭툭 쳤다.
"별 건 아니고, 빼빼로 사 줄 테니 가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게임이라도 해 보라고. 조금 있으면 빼빼로데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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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끝나는 날, 사니와는 형의 조언대로 빼뼤로를 한가득 사 들고 혼마루로 귀환했다. 사니와는 그를 반기는 남사들에게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고, 그의 초기도를 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탁자 위에는 초기도와 사니와의 몫으로 보이는 과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이부자리가 깔려 있다. 사니와는 귀 끝을 빨갛게 붉힌 채 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난데없는 핑크 무드에 당황한 야만바기리에게 사니와가 조심스럽게 과자 상자를 내밀었다.
"야만바기리 씨, 저랑 빼빼로게임 해요!"
"오, 그거 뭐야? 나도 끼워줘!"
사니와는 문을 닫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
결국 아츠시에게 들킨 것을 시작으로 한가한 남사들이 사니와의 방으로 전부 모여들었다. 마침 내번을 끝낸 아츠시와 야겐이 나키기츠네를 끌고 왔다. 그리고 무슨 냄새라도 맡은 듯이 하세베가 따라왔다. 평소 별채에 잘 걸음을 하지 않는 미카즈키가 웬일로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왔고, 츠루마루가 옆 방에서 튀어나왔다. 남사들이 제각각 이불 위에 앉거나 엎드리자 꼭 친구끼리 어딘가 놀러 와 밤중에 모여 앉은 분위기가 들었다.
"그래서 대장, 그 게임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거야?"
야겐의 물음에 사니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제야 형에게 게임 방법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게...... 잘 모르겠어요......"
사니와는 막대 과자를 손에 든 채 멈춰버렸다. 정작 제안한 본인이 게임의 방법조차 모르는 것이다. 남사들이 일제히 사니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츠루마루가 끼어들어 사니와의 손에 든 과자를 빼앗아갔다.
"모른다면 우리 나름대로 즐기면 되는 것 아니겠나. 이걸로 말이지."
츠루마루는 장난스럽게 과자를 휙휙 돌려 보였다. 방에 모인 남사들 사이에서 동의의 목소리가 일었다.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겠구나."
"게임이라는 건 하기 나름이니까."
"굳이 현세의 방법을 따르지 않아도 우리끼리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결국 남사들의 제안에 따라, 사니와는 남사들과 함께 나름대로 빼빼로게임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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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걸 가지고 어떻게 노는 걸까요?"
"기다랗게 생겼으니 기다랗게 늘어놓아 보는 건 어떻겠느냐?"
사니와와 남사들은 제안대로 빼빼로를 길게 늘어놓으며 놀았다. 별채를 한 바퀴 둘러쌀 정도로 기다랗게 늘어놓고 나서야, 남사들 중 누군가가 이 놀이는 별로 재미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사니와와 남사들은 바닥에 늘어놓았던 과자들을 부숴서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에게 먹이로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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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늘어놓는 것보다는 높게 쌓는 게 재미있지 않겠어?"
그다음으로는 과자를 높게 쌓으며 놀았다. 과자를 번갈아 네모 모양으로 놓으며 방 지붕까지 쌓아 올리고, 그것도 지루해지자 누가 먼저 세로로 쌓는 데 성공하는지를 겨뤘다. 아츠시를 빼고는 모두 2개 이상 쌓지 못했고, 우르르 넘어져 바닥에 널린 빼빼로는 전부 미카즈키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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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번에 더 많이 부러뜨리냐로 하는 건 어때?"
"그거라면 이 하세베에게 맡겨 주십시오!"
하세베는 한 번에 세 상자분의 빼빼로를 한 번에 부러뜨렸다. 사니와가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보자 의기향향해진 하세베는 세 상자를 추가로 더 부러뜨렸고, 부러져 바닥에 굴러다니는 빼빼로는 야만바기리와 미카즈키가 전부 먹었다.
-
혼마루의 빼빼로게임은 원정 나갔다 온 쇼쿠다이키리가 별채를 급습하면서 끝이 났다. 사니와와 남사들은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듣고 나서 강제로 해산당했다. 남사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일부는 재미있었다고 웃으며 각자 자기가 있을 곳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는 다시 사니와와 야만바기리 둘만 남았다.
"결국, 그 게임이라는 건 뭐였던 거야?"
"현세에서 11월 11일에 하는 거래요. 서로 과자를 주고받고 그리고....."
사니와의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올랐다. 사니와는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거에요."
야만바기리의 얼굴이 사니와와 마찬가지로 붉게 물들었다. 야만바기리는 거적 아래 표정을 숨긴 채 남아 있던 과자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거라면, 나중에 다시 하자."
방 안 공기가 이상하게 덥게 느껴졌다. 사니와는 아무 대꾸도 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의 초기도가 알아차리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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