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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스트 1 본문

明/뒷이야기

리퀘스트 1

김하임 2016. 1. 23. 19:54
 남사들이 전부 원정을 나가고 난 혼마루는 무척 조용하고 평안했다. 낮잠 자기 좋게 햇살이 따스하고, 땀을 식히기 딱 좋은 정도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그리고 이 좋은 날, 사니와는 욕실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야만바기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혼자 씻을 수 있다니까요!"
"팔 불편하잖아. 도와 줄게."

 사니와의 필사적인 호소에도 야만바기리는 요지부동이었다. 사니와는 빨개진 귀 끝을 하고 야만바기리의 표정을 살폈다. 이쯤 되면 마음대로 하라며 화를 내고 돌아갈 법도 한데, 그는 오늘따라 부드러운 눈으로 사니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야만바기리가 사니와를 보며 고개를 모로 갸웃했다.

"싫어?"

 야만바기리와 눈이 마주친 사니와는 표정을 감추듯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야만바기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니와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

 별채에 딸린 욕실은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거울 옆 선반에 간단한 목욕용품과 수건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샴푸며 비누 따위를 살펴보던 야만바기리는 문득 사니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니와가 욕실 벽에 등을 대고 바짝 붙어있었다. 살짝 풀어진 옷자락 너머로 어지럽게 그어진 흉터가 보였다.
  야만바기리는 손에 든 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몸을 씻는 데 쓰이는 거고... 이쪽이 머리를 감는 데 쓰는 거였던가. 병 뒷편에 쓰여진 설명서를 꼼꼼히 읽은 야만바기리가 사니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가라앉으려는 기분이 사니와의 어쩔 줄 모르는 몸짓에 간신히 다시 떠올랐다. 야만바기리는 한 손에 샴푸 병을 든 채로 사니와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벗어."
"네, 네?"
"씻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
"아니, 저, 역시, 혼자....!"

 조금 즐거운 기분이 된 야만바기리는 사니와의 유카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발버둥은 몸에 손이 닿자마자 금방 사라졌다.

-
".....야만바기리 씨, 오늘 이상해요...."

 사니와의 몸은 마른 편이다. 특히 지금처럼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웅크렸을 때는 등뼈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 뼈에 손을 대 훑고 싶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눌러 삼키며, 야만바기리는 사니와의 머리를 감기는 데 집중했다. 

"....뭐가."

 사니와의 몸이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야만바기리가 사니와의 목을 살짝 잡아당겼다. 머리 감기기 불편하니까 허리 들어. 무심함을 가장한 말투에 사니와의 등이 당장 꼿꼿이 펴졌다. 

"너야말로 지금 이상하잖아."
"그거야, 익숙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누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건. 야만바기리는 아무 말 없이 사니와의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사니와가 몸에 손이 닿을 때마다 흠칫거리는 것은, 비단 부끄러워서 그런 것 뿐은 아닐 것이다. 

"거품 들어가니까, 눈 감아."

 그리고 앞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많이 하게 될 테니까. 사니와의 목덜미에 묻은 거품이 물에 씻겨 깨끗이 사라졌다. 

-
 몸을 씻겨 주겠다는 제안은 사니와의 필사적인 저항에 무산되었다. 야만바기리는 하는 수 없이 마루에 앉아 사니와가 몸을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물소리가 그치고, 사니와가 머리에 수건을 쓴 채 마루에 나타났다. 축 가라앉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야만바기리가 몸을 움직여 제 옆에 공간을 만들었다.  
 이리 와. 낮은 부름에 사니와가 천천히 옆자리에 와 앉았다. 야만바기리는 손을 뻗어 사니와의 머리를 수건으로 문질렀다. 천 한장 너머로 머리칼이 이리저리 이지러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목욕 후 기운이 빠진 것인지 사니와는 살짝 늘어진 채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어느 정도 물기를 말리고 수건을 벗기자 온통 새집이 된 머리가 튀어나왔다. 잔뜩 엉망이 된 모습에 야만바기리는 툭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사니와가 그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황급히 손으로 머리를 잡아눌렀다.

"웃지 마요...."
"안 웃었어."

-

 열심히 손빗으로 머리를 빗은 보람이 있었는지, 사니와의 머리칼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적당히 서늘한 바람이 덜 마른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니와와 야만바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사니와는 가끔 이상한 곳에서 부끄럼을 탄다. 침묵이 길어지자 사니와가 다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느껴졌다. 힐끔힐끔 야만바기리 쪽을 살피던 사니와가 마루에서 조금 몸을 빼었다.

"저, 그럼 본채에 다녀올게요."

 말을 떼자마자 야만바기리의 손이 뻗어와 사니와를 끌어안았다. 졸지에 야만바기리의 어깨에 기댄 꼴이 되어버린 사니와가 몸을 바짝 굳혔다. 목욕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몸이 평소보다 따뜻하다. 야만바기리는 사니와의 귀 뒤로 뻗친 머리카락을 슬쩍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오랜만에 맞는, 별채가 비어 있는 날이다. 쇼쿠다이키리도 카슈도 츠루마루도 모두 원정에 나갔다. 사니와는 일이 없는 것을 못 견뎌 하고 또 다른 남사들을 도우러 갈 모양인가 보다. 일이 잘 풀린다면 한두 명쯤은 별채로 데리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사니와가 혼마루에서 인망을 얻어 가는 것은 기꺼워할 일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다른 이들을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가끔은 세상에 둘밖에 없던 것처럼 지내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는 법이다. 야만바기리는 사니와의 눈을 덮어 가렸다. 손바닥 안으로 당황한 듯 깜빡이는 속눈썹이 느껴진다. 

"야만바기리 씨?"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잖아."

 따뜻한 손이 눈꺼풀을 꾹 눌러온다. 사니와는 잠시 몸을 꼼질대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따뜻한 몸이 서서히 야만바기리의 품 안으로 늘어졌다. 사니와의 움직임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야 야만바기리는 사니와의 눈에서 손을 떼었다. 사니와는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야만바기리는 사니와를 꼭 끌어안고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기분 좋은 듯이 뺨을 부비는 것을 보니 나쁜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야만바기리는 그제야 안심한 듯이 사니와의 머리에 고개를 묻었다. 이제 거의 다 마른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하게 좋은 향기가 났다. 서서히 찾아오는 졸음에 몸을 맡기며, 야만바기리는 원정 간 남사들이 조금만 길을 헤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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